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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3.KR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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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목표를 세운다.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표를 만들고, 그 지표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도 세운다.

그런 일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 삶에는 왜 이런 것이 없을까.


나는 ASML의 Equipment Performance Management 팀에서 리더로 일하고 있다. 팀의 KPI를 설정하기도 하고, EUV 장비의 성능에 관한 KPI를 계산하고 관리하는 일도 맡고 있다.

KPI는 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 성과 지표다. 우리가 이루려는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 지부에서 일하면서 내가 느낀 것 중 하나는, 지표를 정하고 맞추는 데 상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내 경험만으로 한국의 모든 회사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환경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이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눈에 보이고, 어디에서 막히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KPI가 잘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먼저 원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어야 한다.

KPI를 달성했을 때 실제 목표에도 가까워져 있어야, 그 숫자에 의미가 있다.

어떤 지표를 볼 것인지 정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숫자가 좋아졌다는 사실과, 내가 원하던 결과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잘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지표를 정해두고 바라보기만 한다고 좋아지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야 하고, 잘되지 않으면 방법을 바꿔야 한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어떤 순서로 바꿔갈지, 언제 다시 확인할지도 정해야 한다.

그 길을 그려두는 것이 로드맵이다.

목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다. KPI는 그곳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고, 로드맵은 앞으로 어떻게 가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실적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한다.

목표를 세우고, 숫자를 확인하고, 계획을 고치고, 다시 시도한다.

그런데 정작 내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그렇게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지금의 생활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바꾸고 싶다면 무엇부터 해볼 수 있는지.

내가 회사에서 익숙하게 쓰는 방식을, 내 삶에도 조금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인생은 훨씬 방대하고 변수도 많다. 목표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방향을 정하고 시도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예전에는 목표를 정리하고, 지표를 만들고, 기록을 쌓고, 다시 살펴보는 일 자체가 너무 큰 일이었을 수 있다. 지금은 AI와 함께 그 과정을 조금씩 해볼 수 있다. 내가 남긴 기록을 정리하고, 질문을 던지고, 계획을 수정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data-driven life를 살고 싶다.

이 말은 앞으로 이곳에 올릴 글이나, 내가 만드는 앱과 여러 아이디어에 자주 등장할 것 같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사람들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내 삶에서도 내가 실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선택해보고 싶다.

어떤 날이 좋았는지. 어떤 생활이 나에게 잘 맞았는지. 반복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기억과 느낌만으로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 더 오래 남겨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삶을 너무 딱딱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목표는 행복이다.

조금 미리 이야기하자면, 지금 만들고 있는 개인 앱에서도 이런 질문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오늘 행복했는가.

오늘 하루에 만족하는가.

그 답을 어떻게든 숫자로 남겨보고 싶다. 숫자 하나에 하루의 모든 것이 담기지는 않겠지만, 기록이 쌓이면 내가 어떤 날에 행복했고 무엇에 만족했는지 살펴볼 단서가 될 것 같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목표도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기 기준에 맞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돈을 많이 갖는 것만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왜 필요한지, 어떤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먼저 알고 싶다.

내가 세우는 목표와 지표도 결국 그 질문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되는가.


물론 이 생각도 바뀔 수 있다. 하다 보면 모순을 발견할 수도 있고, 처음 정한 목표나 지표가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때는 다시 살펴보고 고쳐보려고 한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향을 정해두고, 살아가면서 계속 수정하는 로드맵이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몇 편에 나누어 이어가려고 한다.

먼저 나를 관찰하고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서, 어떤 미래가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생각해보는 것.

그다음에는 그 목표에 맞는 KPI를 정하고, 큰 수고 없이 일상에서 기록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려보는 것.

일단은 여기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회사에서 하던 질문을, 내 삶에도 해보는 것부터.